위의 사진은 제가 잠시 머물러 있는 중국 절강성의 따탕 이라는 도시의 양말시장입니다.
사실 위에 보이는 양말시장 자체는 근처에 있는 이우시장에 밀려서인지 그다지 활성화 되어있지 않습니다만, 부러운 것은 이 양말 시장 주변에서는 양말과 관련된 모든 원부자재상들이 모여있다는 것입니다.(사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양말을 짜는 갖가지 원사(면, 나일론, 폴리...등등) 는 물론이고,  양말 기계 및 부품 등 양말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모여있지요..

따라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지간한것은 모두 이곳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저런 곳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울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러한 양말 도시 '주지' 에 있으면서 부러운 점이 2가지 있습니다.
(주지시안에 따탕전이 있는 것이지요.. ~전은 우리나라의 ~구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정부주도의 "특화 전략"이지요...
양말시장 근처에 양말에 관련된 모든것들이 다 있어서,
양말을 제조하는 사람들은 편하게 구매해 양말을 제조 할 수 있고,,, 
이러한 양말업체들이 엄청 많이 몰려있으니.
해외바이어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또한 대형화 가 실현가능..
아주 영세한,, 즉 농촌에 구식 기계 몇대를 가져다 놓고 양말을 제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아래 기사에 나오는 저장와즈 처럼 엄청나게 큰 양말공장도 많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대형공장자체가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제가 해외 오더를 진행하다보면, 일단 수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진행하기 힘들정도로 수량이 큰 오더들이 있습니다.
한국은 양말공장의 대형화가 힘들기 때문에 아니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
수량이 큰 오더들을 진행하려면 관리하기가 훨씬 힘이 듭니다...
이처럼 관리비용이 적게 들고, 기계값, 인건비, 땅값등이 모두 싼데 중국의 생산원가가
한국보다 낮은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국보다 더 낫다고 이야기 하는것은 아닙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재질의 같은 품질의 양말을 만들어내려면, 중국에서의 가격 역시 한국이랑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한 품질 좋고, 업체사장의 마인드가 제대로 된 업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업체가 많습니다.  자신의 물건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지요..

저 역시 중국에서 오더를 진행하다보면,
우리 한국사람과 사고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때가 많습니다.
또한 답답할 때가 많지요...

반면 지금 한국에 살아남아있는 양말업체들은 모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고,
특화된 상품이 있습니다. 품질력이 떨어지고, 노하우가 없는 업체들은 대부분이 도태당했으니까요...

중국등 생산원가가 저렴한 나라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 한국의 양말산업은 계속 영위될겁니다.
지금 해외 선진국에서도 양말공장이 계속 운영되고 있듯이 말입니다.

하여튼 중국이란 나라,,, 참 흥미롭습니다. 


아래는 2005년의 양말 도시 따탕에 관한 기사가 있어 담아 왔습니다.

몇년 지난 기사라 지금의 현실과 다른점이 몇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벤츠, BMW, 아우디가 즐비합니다.
현재의 따탕에는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차 3대중에 1대가 벤츠, BMW, 아우디입니다.
그만큼 양말사업을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지요..


인구  1000명 농촌서 세계 양말의 수도로...



[머니투데이 상하이=박형기국제부장]

저장성에 위치한 다탕전(大唐鎭)은 매년 90억 켤레에 달하는 양말을 생산한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한 켤레씩 나눠주고도 남는 양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다탕전을 '세계 양말의 수도'라고 부른다.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양말 박람회에는 전세계에서 10만 명의 바이어가 몰려든다.

다탕의 동남쪽에 있는 성저우시는 '넥타이의 수도'로 통한다. 연간 3억 개를 생산해 중국시장의 4/5, 전세계시장의 1/3을 점유하고 있다. 다탕의 남쪽은 속옷의 수도이고, 서쪽은 스웨터 등 니트류의 수도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인근에 단추의 도시, 지퍼의 도시, 실의 도시 등이 있다. 다탕전을 중심으로 한 이들 도시가 지구촌의 옷장을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 다탕의 유래 : 다탕이란 이름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당나라 시대 중국은 비단을 무기로 세계 섬유산업을 제패했다. 비단길도 이 때 열렸다. 이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나라는 중국 왕조 중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하여 중국인들은 당나라 시대를 `대당(大唐)시대'라고 한다.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주인공 현장 스님이 인도를 다녀와서 쓴 기행문도 '대당서역기'다. 당나라의 후예를 자처하는 다탕전 사람들이 오늘날 세계 섬유산업을 평정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다탕전의 전은 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행정단위다. 정확한 행정명칭은 저장성 주지시 다탕전이다. 주지는 인구 100만, 다탕은 7만 규모다. 지붕에 웨이브를 준 멋진 톨게이트를 지나니 널따란 진입로가 나온다. 인구 7만의 소도시임에도 진입로가 왕복 10차선이다. 가운데는 잔디밭이다. 잔디밭도 약 4차선 너비는 되어 보였다.

신흥 경공업 단지답게 곳곳에 현대식 공장이 세워져 있고, 모든 간판에 `와즈(襪子, 양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세계 양말의 수도에 온 것을 실감케 한다.

시 중심에 시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대규모 양말시장이 있다. 널찍한 주차장에 현대식 4층 건물이 체육관을 연상시킨다. 다탕전에서 생산되는 양말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자전거 주차장에는 자전거가 아니라 오토바이가 주차 돼 있다. 농촌지역 삶의 질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의 평화시장과 규모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옷이나 잡화를 파는 부스가 400개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양말만 파는 부스가 400개라면 엄청난 규모다.

◇ 성공비결 : 다탕전의 성공 비결은 민간의 기업가 정신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원래 다탕전은 70년대만 해도 인구 1000명의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농한기에 농민들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양말을 생산, 도로에 나가 팔았다. 70년대 이 같은 상행위가 이뤄져 공산당은 이들을 자본주의자들이라며 단속했었다.

다탕전 사람들은 이처럼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 원래 저장성 사람들은 상인기질로 유명하다. 취재팀을 가이드 해준 중국인 저우웨이예씨는 "저장 사람에게는 돈버는 DNA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가내수공업이 매뉴팩처링 단계로 이전하는 등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자 정부가 개입했다. 일단 정부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대형화를 서두르는 한편 계열별 수직화를 추진했다. 예컨대, 다탕전 인근에 단추, 지퍼, 실, 옷감 생산 기지를 건설했다.

이후 특화 전략을 선택했다. 이탈리아를 벤치마킹했다. 이탈리아는 코모-비단, 비센자-모직, 베네토-니트류 등으로 특화 돼 있다. 이를 모델로 양말의 도시, 넥타이의 도시, 속옷의 도시, 니트류의 도시 등으로 전문화했다.

이 과정에서 농지를 공장용지로 전용하는 것은 물론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세금도 감면해 주었다. 저우웨이예는 "공산당의 지도가 오늘의 다탕전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다탕전은 후진타오가 최고경영자(CEO)인 '중국 공산당 주식회사'의 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 석세스 스토리 : 가장 유명한 성공 신화는 동잉홍(여. 55)이다. 70년대 월급 70위안짜리 초등학교 선생을 때려 치우고 양말 공장을 차렸다. 현재는 중국에서 가장 큰 양말 공장인 저장와즈의 사장이다. 이곳 사람들은 그녀를 '와즈뉘왕(襪子女王)'이라고 부른다.

하이윈스(41)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부터 손으로 양말을 짜기 시작했고, 96년 '홍윈'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지금 그의 양말은 미국 월마트에 진열돼 있다. 월마트에 양말을 납품하는 것이 이곳 사회에서는 성공의 대명사다.

◇ 비전 : 80년대 초반만 해도 홍콩 대만의 자본이 압도적이었으나 지금은 토종자본이 시장을 접수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홍콩자본이 건설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곧바로 독립, 자신들의 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이들이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거기에다 이들은 일찍부터 규모의 경제를 터득하고 있었다. 저장상인 중에서 원저우 상인이 특히 유명하다. 이들의 특기는 자본의 집약이다. 한 친구에게 자본을 몰아주어 한 부분을 독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상술이다.

원저우상인의 이 같은 수완을 물려받은 다탕전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이들은 인근 양쯔강 삼각주에 대규모 수출 공단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중국은 네트워크화 된 사업을 통해 지역 사회를 살찌우고, 기술력을 축적하는 한편 전문화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단순 조립 분야에서만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다탕전과 같이 특정 산업에 집중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 세계를 정복하는 방법을 아는 나라다.

상하이=박형기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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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발가락 양말 전문 브랜드 FEELMAX홍재화 사장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몇번 뵌적이 있는데, 항상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습과 양말에 대한 긍지 및 자부심에 감탄해왔지요,,   글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이렇게 담아왔습니다.

문득 치킨게임이라는 것이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이 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게 되는 게임이지요,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되는 거죠..

현재 양말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중국 등 생산원가가 적게 들어가는 국가의 경쟁자들과, 또는 옆에 있는 경쟁과들과 말입니다.

서로 득이 되는 경쟁을 하지는 못할 망정, 언제 경쟁자들이 더 이상 못버티고 무대에서 퇴장할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같은 기계,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 같은 제품이 나올 줄 알고 있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 만드는 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이 부분에는 전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양말을 생산하다 보면,  같은 기계, 같은 원료로 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품질의 차이가 천지차로 나는것을 자주 봅니다.

결국은 업체대표 및 생산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의 차이입니다.
업체대표의 정직한 마음가짐과, 자신의 제품에 정성을 다하는 생산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자체가 바로 이런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비결인것이지요..


아래는 제가 읽은 글의 전문입니다.

혹시나 싶어, 홍사장님의 블로그 주소 적어놓겠습니다.
blog.chosun.com/drimtru

'아웃소싱의 길목에서'

사업을 하면서 자기 생산시설을 보유한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아주 크게 성공하거나, 남들보다 크게 망하거나. 

자동차부품을 주로하는 무역회사로 시작한 나는 애초부터 공장을 보유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발가락양말을 하게 되었고, 또 어쩌다보니 공장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그맣지만, 유럽의 바이어들이 주문량을 늘리면서 공장의 규모도 커졌다. 그러면서 필맥스 제품의 우수성과 독특함이 시장에 퍼지면서 홈 페이지를 통하여 OEM생산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Feelmax만을 위하여 양말을 만들기로 이미 파트너들과 협의를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럽에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 2005년경이었다.  

우리는 ‘시장의 경쟁’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독점적인 시장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경쟁자가 있어야 시장이 커간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단, 경쟁자도 잘 만나야 한다. 예를 들면 ‘삼성과 LG'와 같은 경쟁자라면 시장이 같이 키우면서 서로의 파이도 키워갈 수 있다. 삼성과 LG의 경쟁은 어느 곳을 보나 사생결단의 싸움은 아니었다. 두 그룹의 경쟁은 ‘누가 더 먼저, 더 많이’의 싸움일 뿐이다. 그 과정은 상생이면서 파이를 키워가는 게임이었다. 삼성 LG는 매 시장마다 독립된 게임을 벌렸다. 그러나 실제 게임판은 한국시장 전체였고, 게임의 결과를 현재까지로 돌아본다면 삼성LG뿐만 아니라 주변인까지 이득이 되는 플러스 섬 게임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내가 이겨야 네가 지는 사생결단의 게임이 아니다. 얼핏보면 경쟁자와의 관계는, 경쟁적인 것으로서 승리와 패배의 관계다. 경쟁자가 게임에 들어오면, 당신은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단 게임에 들어온 뒤에 당신이 경쟁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함께 승리할 수있다면, 그렇게 많이 잃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경쟁자들과 전적으로 전쟁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삼성과 LG는 좀 다른 방법의 게임을 한 것이다.

  삼성 LG는 제품의 질, 서비스의 질을 경쟁했지 가격경쟁을 하지 않았다. 바로 상대방을 무한절벽의 낭떠러지로 떨어뜨리지 않는 전술이다. 그 것은 바로 마케팅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삼성이 글로벌 차원의 스포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면, LG는 권역별로 토착화된 스포츠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다. 가령 삼성이 전 유럽을 대상으로 브랜드 홍보를 하는 반면, LG는 거점국가를 선별하여 집중 공략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하였다. ‘중국에서는 탁구로, 이라크와 브라질에서는 축구로’라는 모토가 있을 정도로, LG는 철저한 현지화전략으로 스포츠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무한 소모적인 가격경쟁을 하였다면 현재와 같은 상생발전은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삼성LG는 50년간 서로의 뺨을 후려치기는 했지만 밥 그릇을 깨는 경쟁자는 아니었다. 삼성LG는 끊임없이 게임을 변경하면서 확대시킨 것이다. 

그런 경쟁자를 만나는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국의 경쟁자는 그렇지 못했다. 우선 무한가격 경쟁이 그들과의 주된 경쟁방법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시장을 망가뜨리지 않을 정도의 품질은 되어야 했지만, 그들은 기존의 소비자들을 실망시키는 품질의 발가락양말로 유럽의 시장을 공략하였다. 그저 가진 것은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경쟁 뿐이다. 그 당시만해도 Feelmax의 가격은 켤레당 10유로가 넘었었다. 한국돈으로 켤레당 1만원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정도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가격과 품질이 아니라, 그 당시의 유럽시장이 무엇이 좋은 지를 판단할 정도로 성숙되지 못했던 점이다. 거의 시장에서 독점이나 다름없어서 백화점이나 의류 전문판매점에서 우리 이외의 공급자를 찾고 있던 차에 유럽의 섬유쿼터가 풀려서 무한정의 양말 수입이 가능해지고, 그들은 그저 모든 발가락양말이 같을 줄 알고 시장 수요의 거의 10배이상을 일시에 수입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시장은 포화가 되었지만, 중국산의 품질에 실망한 소비자는 발가락양말의 구매를 줄였다. 그리고 우리도 어려워졌다.  

바로 그 때 미국에서 10만장에 대한 OEM요구가 들어왔다. 사실 공장의 생간능력이 남아도는 입장이고, 10만장이면 대략 3달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받지 않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같은 기계,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 같은 제품이 나올 줄 알고 있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 만드는 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똑같은 라면을 끊이더라도 어떤 사람의 라면은 좀더 쫄깃한 면발이 있다. 라면을 끊이는 시간, 물의 온도에 더하여, 끊는 라면에 찬 물을 약간 부어주는 정도에 따라 라면의 쫄깃함이 달라진다. 그 것은 라면을 끊이는 사람의 기술과 성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다. 많든 적든 그 차이가 내 제품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특성 때문에 ‘내 브랜드’를 유지하게 해준다. 만일 남의 이름으로 만들어 납품하는 데 만족한다면, 내 제품의 특성은 남의 특성이 된다. 그래서 브랜드 제품은 대체로 자기 공장에서 만들거나, 특별히 지정된 공장에서 만든다. 

헤르만 지몬이 지은 ‘히든 챔피언’에 나오는 모든 기업이 생산 과정의 많은 부분을 아웃소싱하지 않고, 자체 생산을 하는 이유가 그렇다. 

스위스의 시계 생산회사인 스워치시계를 만든 장본인이자 당시 스워치사장을 맡고 있던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시장의 하위에 있는 저가부문을 저임금을 지불하는 국가의 경쟁사들에게 양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프리미엄 부문에 있으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있는 전략은 하위에 속해있는 부문과 경쟁하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히든 챔피언들이 이 전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센서기술로 시장 지배력을 지닌 회사들 중 하나인 '시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그렇게 되기 위해 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개발 과제를 부여받았다.

1. 보통 부문에서 동일한 성능의 제품을 25% 낮은 원가로 생산하기

2. 프리미엄 부문에서는 같은 가격에 25% 더 높은 성능을 내기

  히든 챔피언들은 스스로 하는 것을 유독 선호하고 아웃소싱을 반대하는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웃소싱은 현대적 경영이론서에서 흔히 만병통치약처럼 칭송받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임금과 고정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러나 사실 아웃소싱을 결정하게 되는 주요 원인은 대체로 원가 때문이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은 히든 챔피언들의 경쟁상의 최고 장점이다. 그래서 이런 품질에 대한 요구로 인해 핵심성분의 생산을 다른 회사에 맡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제품이 가진 유일무이한 장점이 상실될 게 뻔하다. 아웃소싱함으로써 발생할 수있는 또 다른 위험은 노하우의 노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조차도 자가생산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것은 바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OEM의 유혹, 더 저렴한 생산가격을 제시하는 아웃소싱업체의 제안들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번 생존과 관련되 결정을 해야한다. 아웃소싱 생산은 생각처럼 단순히 비용과 연관된 문제만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자기 제품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더러, 제품 개발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있다. 우리는 브랜드를 단순히 마케팅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모든 판매의 기본은 좋은 제품이다. 좋은 제품은 광고할수록 더 팔리지만, 나쁜 제품은 광고할수록 더 적게 팔린다. 차라리 소문이라도 나지 않으면 우연히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만, 잘 알려진 나쁜 제품은 우연히라도 선택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아무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자사 디자인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지 점검한 다음에 하청을 준다. 특히 핵심제품은 자사 전용공장에서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마케팅 회사가 공장에 상당한 정도의 생산 물량과 적절한 가격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품을 생산할 만한 정도의 투자를 할 사람이 없다. 아웃소싱된 특성없는 제품의 브랜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언제나 대체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자사만의 특성을 갖춘 생산시설에 관심을 갖어야 한다.  

사실 자가생산의 위험도는 매우 높다. 자체 생산의 가장 큰 문제는 유연성이다. 자가 생산시설은 당연히 고정자산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토지.건물.생산시설은 물론이고, 고정적인 운영비가 아웃소싱할 때보다 굉장히 높아진다. 그런데 요즘처럼 팍팍 변하는 사회에서 금방 노후화될 고정자산에 투자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걱정이 당연히 앞선다. 뿐만 아니라 제품 판매가 원활하지 못할 때 그 부담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할 때는 돈을 퍼부어도 퍼부어도 독의 밑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그 고통을 오래 겪다보면 아주 깊은 바다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암담함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초기 투자비도 많이 들어가지만, 부족한 유연으로 인한 위험부담과 자금부담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넘길 수있을 정도의 충분한 돈이 있어도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자가 생산을 하지 못한다.  

옛날에 짚신장수를 아버지로 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동네에서 가장 잘 팔렸다. 그래서 아버지 옆에서 곁눈질하며 짚신을 배웠다. 하지만 겉모양이 같은 데도 사람들은 아버지의 짚신만 샀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사람들은 아버지의 짚신만 사가자, 답답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의 짚신과 저의 짚신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잔털”. 아버지는 짚신을 팔기 전에 잔털을 제거하였고, 그랬기 때문에 신어보면 부드럽고 따갑지가 않았다.  

이런 건 돈으로도, 기술로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다. 그런데 남의 제품을 그 정도의 성의를 가지고 만들어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명품이 그냥 명품이 아니다. 남들이 귀찮아 하는 것을 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생산비의 개념은 생각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장사를 하다보면 ‘원가계산’, ‘소비자 가격’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자가 생산시설이 있으면 그런 요소로부터 상당히 자유스러워진다. ‘내가 만든 만큼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누가 만드는 가에 따라 생겨나는 제품의 그 미세한 차이가 나의 브랜드인 ‘Feelmax'만의 특별함을 만들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차이는 현재까지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난 내 제품은 내 공장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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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노래가 왜 이리 서글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네요...

........................................


오래전 그날               - 윤종신 -

교복을 벋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
우리 둘만 있으면
너의 집 데려다주던 길을 걸으며
수줍게 나눴던 많은 꿈
너를 지켜주겠다던 다짐속에
그렇게 몇해는 지나

너의 새남자친구 얘길들었지
나 제대하기 얼마전
이해했던만큼 미움도 커졌었지만
오늘난 감사드렸어
몇해지나 얼핏 너를봤을때
누군가 널 그처럼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 내곁엔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
잠못드는 나를 달래는 오래전
그노래 만이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에는
그옛날 우리의 모습이 있지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살의 설레임
너의 학교 그앞을 난 가끔 거닐지
일상에 찌들어 갈때면
우리 슬픈 계산이 없었던시절
만날수 있을테니

너의 새남자친구 얘길들었지
나 제대하기 얼마전
이해했던만큼 미움도 커졌었지만
오늘난 감사드렸어
몇해지나 얼핏 너를봤을때
누군가 널 그처럼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 내곁엔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
잠못드는 나를 달래는 오래전
그 노래 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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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산업이 사양산업? 그럴 수도 있겠지, 도전없이 안주하는 회사엔…"

"9패 하더라도 1승 거두면 장사 성공… 전단지 하나까지 직접 손봅니다 옷 파는 기초니까"
양말·팬티·티셔츠·슬리퍼까지 일본 '국민 유니폼' 신화 창조

"'사양산업이니까 안 돼'라고, 자신이 하는 일이면서도 그 일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에요. 어떤 장사든 새로운 산업을 만들겠다는 미래의 희망을 가지면 다 잘됩니다. 한국도, 일본도 사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어요. 일본은 2차 대전, 한국은 한국전쟁의 폐허만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교육이 구석까지 퍼져 나가 인재가 많고, 소비자에게 돈도 있어요. 중산층도 있고. 미국과도 가깝고. 게다가 성장센터인 아시아에 있고. 누구나 글로벌 기업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지요. 방글라데시에서 사업하는 분들과 비교해 보세요. 혜택받은 곳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입니다. 우베시에서 태어난 나도 성공했습니다.
자신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가지고 하면 착착 성공할 수 있어요."



출처 : 조선일보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18/2009091801098.html?srchCol=news&srchUrl=news1


사양산업이라고 불리어지는 의류산업을 통해, 일본제일의 부자가 된 UNIQLO 의 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UNIQLO에 대해서는 일본인 친구들을 통해,, 그리고 한국 명동에 나갈때면 보이는 큰 간판을 통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대단한 성장을 한 브랜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지요.. 

쇠퇴하는 의류산업 그중에서도 가장 베이직한 상품만을 취급하는 유니클로가 이런 기록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이 새삼 눈에 띄네요. 또한 같은 섬유업종에 종사하는 저에게는 또 하나의 희망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일을 하며, 항상 들어오던 말이 있습니다.

이제 정말 사양산업이구나...  진작 때려치웠어야 했는데....
이건 해보나마나 실패야... 
비슷한걸 누군가가 시도했었는데 실패했어...
지금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것이 돈버는 거야...

뭐 이런말들... 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지요..

반대로 제가 항상 되뇌이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
다만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 때문에 불가능해보일뿐이다."


저 역시 제일을 사랑하며, 한걸음 한걸음 제 꿈을 위해 걸어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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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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